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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영남일보] <잡스를 패션하다 .2> -패션디자이너 박동준2020-09-18 18:48
작성자 Level 8

패션디자이너 박동준 

영남일보 2011-10-21  




블랙·장식없는 터틀넥·가는 안경테
허리띠 안 한 청바지·흰 운동화…
모든 게 제품을 위한 치밀한 전략

난 ‘블랙 마니아’.

처음에는 레드, 나중에는 브라운과 베이지 등을 잡다가 25년전부터 블랙라인을 잡았다. 주말에는 잡스풍으로 옷을 입는다. 블랙 남방, 블랙 점퍼, 그리고 약간 어두운 블루 계열의 청바지.

그는 이미 패션의 원리를 파악하고 있다. 자기 제품을 스타급으로 부상시키기 위해 어떤 차림새가 어울리는가를 스스로 판단할 줄 안다. 청년시절, 그의 패션을 보면 영화배우 톰 크루즈 이상으로 멋있게 옷을 입을 줄 알더라.

블랙은 참 흥미롭고 다양한 색채미학을 담고 있다.

정직하고 겸손하면서도 오만하고 포용하면서도 편안한다. 또한 권위주의적이면서도 신비감을 갖고 있다. 가장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이다. 블랙만큼 모든 색을 포용하는 것도 없다. 그런데 블랙 슈트도 아니고 블랙 티셔츠라니. 그것도 일본의 세계적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한테 직접 부탁해 자신이 원하는 치수와 색감으로 100벌을 주문제작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주도면밀한 가를 알 수 있다.

검정 터틀넥을 보자. 



그의 얼굴은 길고 야위었다. 터틀넥을 세련되게 입으려면 목 부위를 잘 라운딩해줘야 한다. 근육질 남자의 스판 티셔츠처럼 너무 착 붙게 되면 얼굴이 더 야위어보이고 기형적으로 보인다. 목 부분이 여유있어야 된다. 외관상 잡스의 목둘레는 약 14인치. 티셔츠 목 둘레는 조금 헐렁하게 해 15반~16인치. 활동성을 위해 목 부분 폭을 2.5~3㎝, 목과는 1㎝ 정도 틈을 준 것 같다. 몸통도 너무 헐렁해도 착 붙어서도 안된다. 그래서 소재도 면 80에 폴리에스테르를 20 정도 섞은 것 같다. 그래야 찰랑거리지 않고 조금 폭신하면서도 풍성한 질감이 돋아난다. 가령 면과 폴리에스테르를 1 대 1로 섞으면 잡스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

검정도 아무런 검정이면 안된다. 검정도 정말 다양한 색군이 존재한다. 약 200개 분포하는데 가장 짙은 검정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트 블랙(Z BLACK)’으로 불린다. 하지만 너무 진한 제트블랙은 잡스의 블루진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약간 톤 다운시킨, 그레이 톤이 들어간 검정이 어울린다. 그도 그렇게 입고 있다. 터틀넥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포인트 색도 없다. 그런 게 들어가면 자기 제품이 덜 강조된다. 잡스는 옷을 잘 입을 필요가 없다. 집중을 위해 머리카락도 짧게 잘라버렸다. 안경테도 실처럼 가느다랗다. 다 제품을 위한 전략이다. 손에도 반지를 낄 이유가 없고 시계도 필요 없다. 그의 머리카락도 삼색톤이다. 화이트와 그레이, 블랙이 혼재한다. 턱에도 수염이 없는 것보다 조금 있는 게 더 어울린다.

그의 청바지는 리바이스 501. 덜 야위어보이기 위해서는 다크블루보다는 약간 흰색이 들어간 블루가 더 낫다. 나도 청바지가 여러 벌 있지만 다크 블루 계열이다. 여행갈 때도 반드시 청바지를 챙겨간다.

그의 청바지를 유심히 봤다. 허리띠가 없다. 물론 허리띠를 하면 제품이 덜 인상적이다. 잡스는 허리띠를 일부러 풀어버렸다. 티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는 것과 겉으로 빼내는 것, 어느 게 더 나을까? 당연히 흐름을 위해서는 안으로 집어넣는 게 더 전략적. 죽기 얼마전 집에 머물 때는 티셔츠를 밖으로 빼내입고 있더라. 그의 허리 굵기는 32~33인치 정도, 티셔츠 허리 통은 2인치 정도 더 헐렁하게 뽑는게 좋지만 3~4인치 늘리면 허리에 주름이 지고 패션라인이 복잡해진다. 그럼 프레젠테이션 집중도 역시 하강한다. 바지통도 너무 넓어선 안된다. 잡스는 약 9인치로 처리한 것 같다. 그럼 일자바지, 만약 잡스가 나팔바지로 갔다면 하체라인이 튀게 되고 야윈 체격을 더욱 구부정하게 망쳐놓는다.

잡스적으로 본다면 자기 물건 홍보하러 나왔다면 당연히 자기 옷차림이 아니라 자기 제품이 돋보이게 해야 된다. 신발도 자칫 구두를 고집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흰색 운동화가 블루진에 잘 매칭된다.

잡스풍은 아직도 ING.

잡스 때문에 지역 CEO 사이에도 청바지 정장차림 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왠지 그들의 패션감각이 1% 떨어지는 건 단지 옷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패션의 내면’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