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주제와 매체를 활용한 작업들, 사소한 나의 이야기
그럼 작가는 그동안 어떤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 왔을까. 그 시작은 2007년부터다. 경북대에서 한국화를 전공 중이던 그는 친구를 따라 캄보디아로 해외 봉사를 떠나 1년 가까이 머물렀다. 다음 해 귀국한 그는 캄보디아에서 느낀 것들을 작업의 시작점으로 삼아 분필로 작업한 여러 회화 작품으로 졸업 전시를 열었다. 대표작으로 ‘노래하는 양문이’를 소개했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앵무새 양문이를 키웠는데, 말을 해야만 먹이를 받는 방식으로 길러지던 캄보디아 앵무새들을 보고 출발한 작업이다. 그는 그 앵무새들이미래나 교육보다 생존이 우선인 캄보디아 빈민촌 사람들의삶과 닮아 보였다. 반면 돈이 최우선 가치처럼 여겨지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도 떠올리며 그 이야기를 작은 칠판 위에낙서처럼 풀어냈다.

2010년 공간을 활용한 이색적인 관람 방식을 시도한, 봉산문화회관에서 선보인 개인전 ‘Forest of reminiscence’
2011년 유리상자-아트스타 ver.2 장미 M- Artist Room 전시 현장
“당시 섬에 학교를 짓는 봉사를 했었는데, 그곳의 선생님들은 낡은 칠판과 분필로 수업했어요. 아무리 지워도 분필 자국이 칠판에 흐릿하게 겹겹이 남았는데 그 분필 자국이 시간과 기억, 삶의 흔적처럼 보여 재료로 택했죠. 한국화 졸업 전시였지만 전혀 다른 매체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 청년 작가 미술 축제 ‘아시아프’ 등에 참가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경험 이후 분필 작업에 몰두하던 그는 일찍 작업의 전환을 고민했다. 계속 해외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기에 타문화에 기반한 작업을 이어가기에는 소재에 한계가 찾아왔다.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무엇을 해나가야 할지에관한 개인적인 고민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대표적으로 멀리는 볼 수 있지만 가까운 것은 잘 보지 못하는 ‘양’을 소재로 그린 회화가 있다. 또 20대 후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던 시기를 겪으며 그렸던 ‘용기 터널’, ‘격려 터널’ 등 ‘터널’ 회화 시리즈도 있다. 터널 회화는 주변의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있는 작업이다.
작업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2010년 석사 청구 전시를 준비하며 봉산문화회관 3전시실을 찾았다. 높은 층고의 창 사이로 들어오는 강한 빛에서 ‘공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전시 공간을 두 개로 나누고 한쪽은 캄캄한 방으로 구성했다. 관람객은 손전등을 들고 들어가 벽면 가득 목탄으로 기록된 일상의 흔적, ‘기억의 숲’을 마주하게 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 속에는 방황하면서도 나아갈 길을 찾으려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 2011년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 전시에 참여했을 때는 사면이 유리로 된 공간을 작업실처럼 꾸미고, 미술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작업 과정 자체를 전시로 제시하는 시도로도 주목받았다.
“공간을 활용해 관람객이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며 조금 더 쉽게 저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때로는 소극장처럼 꾸미기도 했고요. 자연스럽게 평면에 머물던 풍경들이 입체와 설치로 확장됐습니다.”
난민을 바라보는 유럽인의 태도를 표현한 설치 작품과 탈북민의 이야기를 담아 베를린에서 선보인 전시 ‘트라우마 트릭스터’ 전경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다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놓던 그의 작업에 다시 타국의 경험이 등장한 것은 해외 레지던시에 머물며 부터다. 2015년 중국 항저우, 2018년 독일 베를린에서 입주작가로 활동했고, 오키나와에서는 여행과 전시 초청으로 머물기도 했다. 이 시기 작품에는 타국에서 관찰한 풍경과 시선이 다시 스며들었다.
항저우에서는 중국 전통 종이와 먹을 주로 활용한 회화 작업을 했다. 자연친화적이고 부유한 동네인 그곳의 연못에 있던 ‘황금소’를 보며 부를 과시하는 이들에 관해 풀어낸 작품이 대표적이다. 베를린 장벽 빈민촌 인근의 레지던시에 살았을 때는 난민과 탈북민의 삶에 주목했다. 베를린에서 시리아 난민들 영상을 찍는 작가와 작업실을 같이 쓰며 교류했고, 한국에 있는 탈북민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작업을 준비했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그 복잡한 감정을 작업으로 풀어냈다. 예를 들어 비둘기를 쫓기 위해 독일 테라스에 설치된 까마귀 모형을 모티프로, 직접적이진 않지만 난민들을 거부하는 유럽인의 모습을 담은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오키나와에서는 전쟁의 기억과 과거 류큐 왕국이라는 명칭으로 중국 등과 교류하며 복합적인 문화가 공존하게 된 이곳의 풍경을 마주하며 마치 일기를 쓰듯 느낀 것들을 회화, 설치 작품을 풀어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작업의 폭이 넓어졌어요. 또 하나, 당시 곧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 친구와 앞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풀 한 포기까지 소중히 보며 기억에 담아두려 하더라고요. 저는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것들이었죠. 그때 제 삶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돌아보게 됐어요. 하루의 소중함, 다정한 인사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게 된 이유입니다.”
분도 신규 전시 출품작-Warmth Passing By, oil on canvas, 117x91cm, 2026
hungry, china ik on chinese paper, 120x180cm, 2015
다정히 건네는 안부 인사
그가 일상의 소중함에 더욱 집중하게 된 데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시간도 영향을 미쳤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시기, 그는 대구미술관 기획 전시 ‘새로운 연대’에 참여하며 ‘진정한 위로’를 전하는 작업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그리고 이달 장미 작가는 개인전을 통해 다시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사)박동준기념사업회/갤러리분도가 기획한 청년작가 프로모션 전시(6.15.~7.3.)다. 청년작가 2인을 초대하는 ‘카코포니 플러스’를 확장해, 중견으로의 도약을 앞둔 작가 1인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올해 처음 선보이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다. 선정 첫 작가로서 장미 작가는 신작 중심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 중이다.
“이번 전시는 오로지 평면 회화로만 구성했습니다. 그동안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하며 입체적으로 전시를 선보여 왔기에, 스스로 평면만을 가지고 선보이는 전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만큼 더 집중해서 작업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까지 저를 응원해준 분들께, 제가 받았던 격려처럼 다정한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최근 장미 작가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평범한 삶의 존엄과 일상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막막한 일상 속에서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네는 일, 그 다정한 순간들이야말로 그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세계다.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잘 지내고 있나요?”
갤러리 분도에서 진행 중인 장미 초대전 현장
글·사진_ 이효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