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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국섬유경제] koko 박동준 창립 30주년 기념2020-09-18 18:48
작성자 Level 8

koko 박동준 창립 30주년 기념

이젠 의 식 주 모두 디자이너가 담당해야

한국섬유경제 2001-07-11 

 


 

패션디자이너라는 한계에 머물지 않고 ‘문화예술인’ 거듭나고 있는 코코 박동준.

72년 이후 30년이란 짧지 않은 여정속에서도 그녀는 항상 ‘처음의 모습’을 거울삼아 디자이너이자 예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아름답고, 품위있고, 멋있는 옷’을 추구해온 코코 박동준.

지나온 30년의 열정만큼이나 앞으로의 계획 또한 이에 뒤져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는 그녀.

현실과 부딪치며 살아 온 그녀를 만나 향후 계획과 지난 30년 속에서의 「KO KO 박동준」에 대해 얘기들어 봤다.



■ 「패션」이란 동종분야 30년.

패션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적잖은 회고가 있을 것 같습니다.

▲ 30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야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과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옷을 만드는 단순한 작업을 좀 더 의미 있는,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식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 것 같습니다. 어느 철학자가 “이만큼 와 보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되더라”라는 말이 정말 실감이 납니다.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처음 배울 때의 설레임과 탐구심이 변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일반적으로 디자이너 개인명의를 브랜드 네임으로 활용하곤 하는데 「koko 박동준」을 브랜드명과 회사명으로 하게 된 이유는?

▲ 어머님께서 개인적인 동기로 다른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KoKo 의상실」을 인수받은 것이 제가 designer의 길을 걷게 된 계기 였고, 그것이 ‘코코 박동준’의 브랜드로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KoKo는 불어로 ‘토끼’ ‘귀염둥이’라는 의미와 함께 제가 또 토끼띠이기도 해서 애칭으로도 사랑스럽고, 또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애칭도 ‘코코샤넬’이고 해서 저도 제 이름과 함께 부르기도 쉽고, 기억되기 쉬운 이름이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올해 들어서 벌써 개인·공동의 패션쇼를 2회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년 전시회, 아트전, 패션쇼를 포함해 4∼5회 이상을 진행해(참가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패션쇼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Designer는 4가지 부류의 Design을 해야합니다.

①Unwearable Art(예술의상)

②Art to Wear(입을 수 있는 예술의상)

③Haute Couture(맞춤복)

④Pret-a-porter(기성복), 이렇게 나뉘어 집니다.

쉽게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성복에서부터, 한 사람을 위한 연주의상, 연극의상, 무용의상 등 그 테마에 맞게 해야 하는, 그러니까 입을 수 있는 예술의상과 입을 수 없는 예술의상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듭니다. 이제 의, 식, 주 모든 것을 Designer가 해야할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작업은 계속해서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작업입니다. 그것에 정신을 숙성시키는 작업에는 늘 어떤 방법이든지 자신의 내면을 용감하게 드러내야 하고, 해오던 작업이나 또는 새로운 작업이라 할지라도 그 전에 하던 것과는 조금 아니면 많이 달라 보이게 하려는 내면의 소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패션계 입문 이후 첫 패션쇼 무대에 올랐을 때와 3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들은 어떻게 다르겠는지요.

▲ 처음에 쇼를 할 때는 어떤 책임의식이나 사명감이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쏟아 내어 놓았다면, 지금은 언제나 컨셉을 위해서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부담과 책임의식을 갖고 일하지만 언제나 결과는 나 자신에게 만족을 다하지 못하고 다음 쇼에 기대를 걸고 있지요. 그러나 언제나 처음 쇼를 하는 것처럼 긴장감은 3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기에 늘 첫 패션쇼를 하는 기분입니다. 그러면서 최선을 다해 후회하지 않는 쇼를 하려고 하는 것도 처음이나 30년이 지난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기에 별 다를 바는 없지만, 앞으로 40년, 50년이 지난 후에도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때 지금과 똑 같은 마음으로 있기를 나 자신에게 바랄 뿐입니다.

■ 이제 문화·예술의 한 장르로 그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패션」, 「패션쇼」, 「패션=크리에이티브」라는 등식에 대한 생각은?

▲「패션=크리에이티브」는 우리가 디자이너로 살아가야 되는 유일한 이유일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등식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3등 패션을 우리들 후배들에게 물려주게 되지요. 지금 수입품이 우리 생활에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엄청납니다. 우리 자녀나 제자, 후배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위치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선진국에선 패션이 예술의 장르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되었음을 보더라도 패션은 창의적인 작업이기에 문화, 예술과 접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필드는 냉혹합니다. 그러한 차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더욱더 실력을 쌓아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앞서 질문과 중복될 수도 있겠는데, 매년 적잖은 패션행사를 추진케 하고 쉼없이 달리게 하는 원동력과 에너지원은 무엇입니까?

▲ 디자이너에게의 원동력은 앞서가고자 하는 정신에서 온다고 봅니다. 전 스트레스가 쌓일 때 영화나 연극을 자주 보는 편인데 오래전에 본 영화 중 「City of joy」에서 인도에 자원봉사 온 여의사 얘기가 늘 기억이 납니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3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째는 현실에서 도망가는 사람, 둘째는 부딪치는 사람, 그리고 셋째는 방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여의사는 현실과 부딪치며 인도의 오지에서 이겨 나갑니다.

저도 부딪치는 사람으로 살아온 것 같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 속에서 나의 삶의 철학을 만들면서 일에 대한 집념이 원동력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 대구는 지금 「패션도시-대구」를 타이틀로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한 채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패션도시-대구」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이 있다면?

▲ 대구가 섬유패션도시의 타이틀을 가지게 된 것부터가 이 도시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겐 사실 영광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우리가 몇 천만배 노력해야 그 나름대로 만족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패션에 대한 좋고 나쁘고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닌다면 결국 우리는 성공합니다.

패션은 안목이며, 문화의질은 안목이 결정하며 그 안목은 결국 감각이며, 이것은 오랫동안 꾸준한 노력의 결과 입니다.

예를 들면 유치원 때부터 미술관이나 박물관, 음악회에 가는 습관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오늘날 이태리가 세계 섬유 패션의 50%이상을 수출하고 있는 것은 11세기 때부터 지역별로 단위화 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 주 요인입니다.

100년을 단위로 해서 주택주거형태, 의상, 건축, 등의 문화예술을 작은 단위별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지역적인 특징들과도 연결하여 현대화하고 있습니다.

이태리처럼 문화를 기초로 미래지향적이고, 지역민들의 끝없는 대화와 노력으로 체계적인 연구의 바탕위에 있을 때 정신과 혼을 파는 작업인 섬유와 패션의 발전은 이루어지고 또 서로의 전문성을 서로 잘 연결된다고 봅니다.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적인 도시로 변신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습니까? 젊은이들의 착장방법과 신경향을 주제를 찾아서 제시해야 합니다.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패션에 미치는 것들을 우선 파악한 후 브랜드 파워로써의 한국미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결국 하이테크(소재)와 하이터치(人間의 5개의 감각기관)로 혼합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태리가 문화를 이용한 섬유라는 것을 간파 했다면, 그 문화가 오늘의 수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상식을 알고 있다면, 학생, 지성인, 기업가, 시민 모두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문화예술에 관심과 노력을 가져서 우리도 정신을 파는 작업으로 변화시켜 미래를 밝혔으면 합니다.

■ 개인샵을 중심으로 2-3개 정도의 매장만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매장운영 내지 유통분야 전개 계획은요?

▲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우리나라 경기가 좋았을때 매장의 수를 늘리는 문제를 많이 생각했었고 유혹도 많이 느꼈습니다.

개인적인 성격일 수도 있겠지만, 오뜨꾸뛰르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은 옷, 만들고 싶은 옷, 그리고 패션쇼와 전시회를 하면서 나의 성숙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매출에 긴장해야 하는 백화점에 매장을 자제하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koko 박동준」의 「옷」이 갖고 있는 컬러와 고집이라면.

▲ 요즈음처럼 트렌드를 중시할 때는 Designer의 철학이 존재하기 힘들지만 저로써는 그것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좋은 옷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옷속에 나의 정신과 노력이 엿보이는 것이 중요하며 Black, Grey, Khaki, Blue, White는 언제나 나의 쇼와 매장에 걸려있습니다.

제2의 피부로써 늘 편안하게 다가서면서 여성을 아름답고 품위있게 그리고 멋있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멋은 여유에서 오기 때문에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옷의 형태미를 중시합니다.

■ 30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가운데 한번쯤은 패션이 아닌 딴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을 것 같습니다.

▲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는 그 기술과 패션에 대한 여러 지식이 미성숙할 때라서 그런지 정말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많았고 다시 태어나면 현대무용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무용에 소질이 있어 그런것은 아니고 자기를 더 솔직히 몸으로 표현하고, 몸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나의 친구 현대무용가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하니, 모든 직업에 대한 어려움은 같은가 봅니다.

■ 앞으로 새롭게 구상하고 계신 계획들이 있다면?

▲ 우선 10월 17일∼10월 31일까지 대백프라자 갤러리(A,B화랑)에서 ‘박동준 30주년 기념 전시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Un Wearable Art와 회화적 표현, 아이디어 발상법, 메모노트, 또다른 History, 2002년 S/S 인도민속의상을 주테마로 하고 컨셉, 디자인을 「This is new」라는 part로 스케치와 전시가 이루어지고, 70년대와 80년대의 패턴과 예술의상과 나의 스승인 정점식 선생님, 재미화가 변종곤 선생의 의상과 회화의 만남 등이 있습니다. 그 다음 파리, 미국의 진출을 점차적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이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리며, 패션 디자이너로써의 꿈을 키워가는데 있서서 근본적인 「끼」, 「근성」, 「노력」의 함수관계는 어떤것일까요?

▲ 「끼」, 「근성」, 「노력」이것은 필연적입니다. 우리의(의,식,주) 개념처럼 Designer에게는 Hardware, Software 외에 senseware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senseware는 Designer의 잠재력으로 수많은 것을 저장해야 하는 필연의 관계입니다. 벨기에 앤터워프의 린다로퍼 교장은 "나는 옷이라면 색상과 옷감 그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제대로 된 디자이너 한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저장하여 분출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 것 입니다. 영혼을 담고 있지 않은 옷은 그 만큼 생명력이 짧습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꿈의 실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다. 



<김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