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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구신문] 박동준기념사업회 올해 작가 장미, 갤러리분도서 ‘다정한 인사’展2026-07-10 20:23
작성자 Level 8


박동준기념사업회 올해 작가 장미, 갤러리분도서 ‘다정한 인사’展

[대구신문]  2026-06-18



삶의 끝에서 발견한 빛,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
죽음과 상실 성찰하며 본질 탐구
인간 지탱하는 건 사랑과 다정함
산·강·길·터널로 마음 풍경 선봬
풍경으로 서사 전개하되 재구성
어두운 터널 끝 빛으로 희망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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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작가가 갤러리분도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사람이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 대개 죽음과 맞닥뜨리는 순간 일 것이다. 너무나 당연시하던 일상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장미 작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발병과 죽음 직전까지 치달았던 위험했던 순간들을 경험한 것이 계기가 됐다. 가까운 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죽음이 자신의 당면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때 그에게는 “삶의 끝에 서게 된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성공과 실패일까, 성취와 경쟁일까. 아니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았던 마음들일까”라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이 질문은 장미의 작업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죽음을 통해 삶을 통찰하게 됐고, 삶에서 필요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룬 영화 ‘빛’ 등의 임사 체험 자료들을 찾아보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많은 이들이 죽음을 어둠이 아닌 ‘빛’으로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갤러리 분도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Warm Greetings, My( ). / 다정한 인사’는 바로 이러한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는 박동준기념사업회가 젊은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추진하는 청년작가 프로모션인 ‘카코포니 플러스’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장미는 올해 작가로 선정됐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에 대한 시각적 응답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상실과 불안, 두려움 속에서도 인간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곱씹으며 그가 찾은 답은 ‘사랑’과 ‘다정함’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산과 강, 길과 나무가 펼쳐진 자연 풍경들을 만난다. 풍경은 익숙한 자연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는 아니다.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특정할 수 없는 풍경, 현실과 꿈의 경계에 놓인 듯한 장면들이다. 작가는 이를 “마음의 풍경”이라고 부른다. “제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풍경으로 시각화한 작품들입니다.” 


작가가 여행지에서 마주했던 풍경의 잔상을 모티브로 서사를 전개하지만, 이미지는 새롭게 재구성된다. 그가 삶 속에서 경험한 감정이나 누군가에게 받았던 위로와 다정함의 감정들이 풍경 속에 녹아든다. 실체가 없는 마음 상태를 풍경으로 시각화했을 때, 현실을 재현한 풍경과 같을 순 없다. 그의 화면 역시 그렇다. 다분히 몽환적이다. 그는 산과 나무, 강은 명확한 형태 대신 덩어리처럼 표현되고, 뭉개진 붓질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마음을 시각화해 간다. 나무 또한 사무처럼 보이고, 구름처럼 보이는 효과도 같은 맥락이다. “대상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자연을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 응집된 형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인식했을 때, 작가가 절박하게 주목한 개념은 ‘사랑’이다. 살아 있는 동안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화면 속 풍경을 관통하는 정서는 다정함인데, 그 정서는 ‘사랑’에 대한 에두른 표현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지만, 저는 다정함으로 인식했어요. 다정함은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근간으로 하니까요.” 

자연 풍경 속에는 길과 자동차, 터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터널은 작가에게 삶의 한 구간을 상징한다. 누구에게나 불안하고 답답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게 되는데, 터널은 그런 시기에 대한 은유다. 그러나 작가는 “어두운 터널은 영원하지 않다”고 강변하며 위로를 건넨다. 터널은 반드시 출구가 존재한다고 믿고, 작가는 그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그려 넣으며 어둠으로부터의 탈출을 암시한다. 



평생 나눔 실천한 할머니 삶 모티브

집합 의미 Σ에 다정함 정서 ‘꾹’

마음이 모이는 장소 상징적 표현

“전시, 날 성장시킨 마음의 기록”

 사랑·위로·삶 지탱하는 힘 전달


“빛을 통해 어둠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화면 속 ‘빛’은 사랑과 다정함의 상징이다. 이러한 시선은 작가의 할머니로부터 비롯됐다. 95세로 생을 마감한 그의 할머니 장례식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전쟁 시절 할머니로부터 도움받았던 이들, 어려운 시절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하는 이들이었다. 그의 할머니는 평생 사랑과 나눔의 삶을 실천했던 인물이었다. 장미는 그 장면을 잊지 못했고, 할머니의 배려와 다정한 정서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서정으로 이어졌다. “할머니는 말보다 행동으로 사람을 대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결국 사람에게 남는 것은 업적이나 명성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번 전시작 중 풍경 속에 새겨넣은 ‘시그마(Σ)’라는 텍스트에 다정함의 정서가 담겼다. 수학 기호인 시그마는 합과 집합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를 ‘마음들이 모이는 장소’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거대한 산세처럼 보이는 형상들은 사실 수많은 기억과 감정, 관계의 흔적들이 쌓여 만들어진 마음의 풍경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받았던 마음들이 결국 나를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 ‘행복이 돌아온다’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화면 속에는 먼 길을 돌아오는 존재를 기다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존재 자체가 소중하고 반가운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실패도 하고 뜻하지 않은 일을 겪기도 하죠. 하지만 그 사람 자체를 기다리고 환영해 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장미 자신도 그런 다정함의 힘으로 삶의 터널을 건너왔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시기,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자주 가는 카페의 기프트 카드를 선물해 주거나 학원비를 보태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질적인 도움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의 마음이었으며, 그는 그런 마음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지나왔다. “이번 전시는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를 성장시켜 준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인간의 감정을 예술의 자양분으로 활용한 시기는 독일 레지던시 시기로 거슬러간다. 그는 당시 난민과 탈북민을 둘러싼 환경을 작업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정치적 문제보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맞춰졌다. 사랑, 상실, 외로움, 기다림, 희망 같은 감정들이었다. “난민이라는 선입견으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사실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번 전시에서 외부로 향했던 그의 시선은 내면으로 이동했다. 타인을 향했던 관심은 이제 자신을 포함한 인간 존재를 지탱하는 감정의 근원으로 향했다.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해는 반드시 뜨거든요. 흐린 날은 있어도 해가 뜨지 않은 적은 없어요.” 그가 건네는 희망 어린 위로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는 아니다. 어둠을 인정하면서도 빛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 바로 그런 희망이다. 이는 그의 작품이 위로를 강요하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작가는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둔다. 그 여백에서 누군가는 상실의 기억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따뜻한 마음을 건네준 사람을 기억하기를 희망한다. 또 누군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의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작가의 진심이 스며 있어서다.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바라보게 된 작가, 타인의 다정함 속에서 성장한 작가, 그리고 그 마음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고자 하는 작가의 진심이 화면 곳곳에서 배어난다. 산과 강, 나무와 길로 이루어진 풍경들은 그에겐 마음의 지도이며, 그 지도는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라는 삶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 앞으로 데려간다. 

전시는 7월 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