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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구신문] [전시 따라잡기] 갤러리분도 ‘2025 박동준상’ 수상자 이슬기 초대전2026-01-13 23:54
작성자 Level 8

[전시 따라잡기] 갤러리분도 ‘2025 박동준상’ 수상자 이슬기 초대전
[대구신문] 2025-11-27


누비·단청…전통감각, 현대구조로 짜맞추다
佛 미술학교 스승 조언 따라
생활 속 한국 전통문화 탐구
문자 어원·사자성어 기원 탐색
이불에 기하학적 문양으로 표현
한글 현판 제작 전통서체에 도전
장인과 협업 통해 영감 얻기도
사라져가는 언어·삶의 방식 등
전통의 조형적 재해석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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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작가가 갤러리분도 전시장에 걸린 누비이불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화려한 색채의 기학학적 문양들이 누비이불에 장식돼 있고, 전통문창살을 차용한 격자무늬가 전시장 벽면을 채웠다. 그리고 현판에는 한글도 새겨져 있다. 이슬기 작가의 작업 세계인데, 갤러리분도 개인전에 출품됐다. 그는 ‘2025 제6회 박동준상 미술부문’ 수상로 선정되어, 이번 전시에 초대됐다. (사)박동준기념사업회(이사장 윤순영)이 주관하는 박동준상은 다양한 패션·문화예술 분야 크리에이터 발굴 및 육성을 위해 2020년부터 시작됐다.


이슬기의 작업은 한국의 전통적 뿌리로부터 출발한다. 누비, 단청, 명주, 오방색, 속담, 사자성어, 현판 등 한국의 전통 문화들이 작업의 구조적인 기반을 이룬다. 이러한 작업 경향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장착됐다. 스승인 장-뤽 빌무트(Jean-Luc Vilmouth)가 그에게 “한국을 열심히 봐보라”는 주문을 했고, 그때부터 그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우리의 생활 속 전통문화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오히려 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인 ‘이불프로젝트 : U’와 ‘현판프로젝트’, ‘단청 벽화‘ 등의 작품이 걸렸다. 누비이불 작업은 2014년 탄생했다. 프랑스 친구에게 누비이불을 선물하려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누비이불을 구입할 생각으로 수소문했지만, 국내에서 더 이상 전통 누비이불을 제작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의 생각은 “내가 직접 누비이불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요소에 대한 관심은 이미 1992년부터 그가 이방인으로 프랑스에서 조각을 전공하던 시기부터 싹텄다. 여러 나라의 공예나 언어, 색채 등의 민속 문화에 스며있는 전통적인 요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보고 있던 터였다. 누비이불 작품은 그 연장선이었다.


“현대에 전통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는 전통에 뿌리를 둔 작가에게는 해결해야 할 질문이다. 이슬기도 그랬다. 그는 기하학적 패턴을 활용한 현대적인 미감으로의 재해석이라는 방향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저는 서로 다른 언어, 국가나 민족이 가진 문화의 고유성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것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시도했어요.”


전통문화를 기하학적 패턴으로 축출하는 그의 작업은 특정 민족이나 국가 단위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에게 인간 보편의 삶이나 정신의 본질을 축출하는 과정으로 인식됐다. 그의 행보 이면에는 다양한 문화들의 기원을 거슬러 가는 문화의 원형 탐색이 자리했다. 여기에는 비록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들을 생성하며 살아온 인류지만, 그 기원을 거슬러 가면 인류 보편의 삶의 원형을 만난다는 논리가 개입돼 있었다.


그가 삶의 원형을 기학학적 문양으로 축출한 배경에는 ‘원활한 소통’이라는 개념이 자리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더라도 원형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은 이해되고, 그것은 곧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해소하는 원천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전시작인 ’이불프로젝트 : U‘는 일상적인 오브제인 이불을 매개체로 한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탐구가 돋보이는 프로젝트다. 속담이나 사자성어의 유래나 기원을 탐구하고, 그것은 다시 화려한 색과 단순한 기학학적 문양, 그리고 명주 실로 촘촘하게 박음질한 결 등을 통해 회화적 조형성으로 거듭난다.


작가가 누비이불을 처음 떠올릴 때의 생각은 단순했다.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이, 이불 속에 새겨진 이야기의 영향을 받아 꿈이 달라지면 어떨까?”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불의 표면을 하나의 관계가 형성되는 장으로 이해했다. “한국의 누비는 볼록하나 똑바른 것이 녹차밭에 이루어지는 골 같아 보여요.”


’견골상상(見骨想象)‘을 형상화한 작업은 누비이불 작품의 콘셉트를 이해하는 대표작이다. 한자어 속에 숨어 있는 상형의 기원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뼈를 보고 코끼리를 상상한다‘는 이 사자성어는 눈에 보이는 작은 단서나 흔적을 가지고 그 뒤에 숨은 더 큰 세계나 의미를 상상해내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한다. 작가는 직선·사선·수평·수직의 누빈 방향으로 코끼리의 귀, 길게 내려오는 코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며 문자와 생물의 관계를 재조립한다.


’현판 프로젝트‘는 작가가 내한했을 때 조선시대의 절이나 궁궐, 큰 기와집 등의 전통건축물에 부착했던 현판들을 모은 전시를 감상하거나, 덕수궁의 대안문 현판을 보고 흥미를 가지면서 시작됐다.


과거의 현판들이 정각의 이름이나 의미 있는 글자들을 새겼다면, 그의 현판에는 특정한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의성어가 만화적인 픽토그램으로 표현돼 있다. 조형적 유희와 동시대의 감각을 수렴한 표현방식이다. 그림문자를 의미하는 픽토그램은 어떤 대상이나 장소에 관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도 동일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도록 조합한 그림을 가리킨다.


과거의 현판이 한자를 기반으로 했다면, 그의 현판에는 한글이 새겨져 있다. 그는 한자의 의미보다 기호가 가진 물성인 볼록함, 양각, 나무의 결 등을 강조한다. 이는 전통 서체의 권위를 해체하면서도, 나무와 문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생동하는 이야기들을 끌어냄을 의미한다.


또 다른 작품 전시작인 ‘단청 벽화’은 전시장 벽의 색면에 등장하는 격자 선의 천의 짜임새를 흉내 낸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업에서 격자 구조로 단청의 색을 변주한다. 격자구조는 모시 천의 씨실과 날실의 짜임의 형태로, 문살의 우물 정자 형태로 표상되는 동시에 무수한 빈 공간을 품은 구조다. “다양한 문화 속에 존재하는 격자무늬들은 이질감 없는 조형감으로 통합 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슬기의 작업 구조는 형식과 관계라는 양대산맥으로 짜여진다. 형식적으로는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기하학으로 압축하고 색으로 의미의 톤을 조율한다. 이때 특이하게도 그는 전통공예가들과의 협업을 선호한다. 형식에 관계성을 부가하는 것이다. 장인들과의 협업은 이슬기의 작업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는 장치가 된다. “누비이불을 제가 아무리 잘 만든다 해도 누비이불 장인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들과 협업할 수밖에요.”


그의 장인들과의 협업은 그들의 숙련된 제작 기술만을 단순하게 빌리는 방식을 넘어선다. 그들과의 협업과정에서 오랜 반복과 훈련으로 단련된 장인들의 ‘도 닦는 듯한’ 집중과 시간을 목격하게 되고, 그것들은 그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된다. 이러한 협업이 작가에게는 전통이 현재화된 감각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며, 그것은 단순한 ‘제작 위탁’에서 벗어나 그와 장인들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예술적 동행으로 작용한다.


한국적인 것을 뿌리로 두지만 그는 특정 지역성을 강조하려는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지역마다 사라져가는 전통적 기술과 언어,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삶의 방식을 하나의 조형적 아카이브로 재해석하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전통에 갇히기보다 전통 기호를 해체하고, 전통 문양을 추상화하며, 고유 언어를 패턴화하는 과정을 통한 그의 작업은 오히려 국제적 감각의 현대조형에 가깝다.


그런 그의 작품을 감상자들은 “한국적인데, 이상하게 이색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전통의 감각을 현대적 구조로 다시 짜 맞추는 그의 예술을 독특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한국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한 그의 작업은 전 지구적 전통과 현대 조형의 교차로 확장된다. 멕시코 산타마리아 익스카테크 마을에서 발견한 바구니 공예가 대표적이다. 그 마을에서 바구니는 생활용기이자 교환과 거래에서 필요한 화폐를 대체했다. 작가는 익스카테크 마을의 바구니 문화 속에서 그들 고유의 ‘구두 언어(버나큘러)’, 익스카테크라는 독특한 언어 체계를 발견한다. 전시는 12월 12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