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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인터뷰


Column & Interview

이명미 서양화가와 갤러리분도 박동준 대표

INTERVIEW
작성자
박동준기념사업회
작성일
2020-11-03 17:13
조회
2337
영남일보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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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분도에 전시된 이명미 화가의 그림을 배경으로 이 화가(왼쪽)와 박동준 갤러리분도 대표가 포즈를 취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이명미 화가(66)와 갤러리분도 박동준 대표(65)는 1990년대 말, 40대 끝자락에 만났다. 이미 지역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었던터라 처음 만나기 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첫 만남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 시기는 우리 두 사람 모두 너무 바빴던 터라 아마 여러 행사에서 만났을 수도 있지 싶은데 정확한 첫 만남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명미 화가가 열심히 활동하는 뛰어난 작가였다는 기억은 뚜렷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박 대표가 그 당시 몇 안되는 여성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이 화가를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박 대표의 말에 이 화가는 “나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 뚜렷하게 인식을 하고 현재처럼 둘도 없는 친구 같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박 대표가 2001년 이 화가의 그림을 자신의 의상에 접목해 패션쇼에 공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박 대표는 현재 갤러리를 운영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구를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박 대표와 이 화가의 이 같은 협업은 2002년, 2004년, 2005년에도 꾸준이 이어졌다. 물론 이들의 관계는 이 같은 일을 통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쉰 가까이 되어 뒤늦게 만난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너무나 친밀한 관계로 급속히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패션디자이너였던 박 대표는 2004년 새롭게 마련한 건물에 패션매장만이 아니라 갤러리분도라는 전시공간도 마련했는데, 이즈음부터 갤러리 대표와 화가로서의 만남도 하나둘 쌓여갔다.

이 화가는 “갤러리분도에서 2005년 첫 전시를 열었다. 개인전이 아니라 이기봉, 김지원, 정태경 선생과 함께한 4인전이었다”며 “갤러리분도에서 전시하면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많이 나누게 됐다”는 말도 했다. 박 대표가 갤러리까지 운영하면서 이 작가와 더욱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지게 됐다는 의미이다.

이들이 이처럼 가까워지게 된 데는 이런 이유 외에도 서로가 가진 개인적인 아픔도 한몫을 했다. 박 대표는 1999년 너무나 아끼던 남동생이 요절해 말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고, 이 화가는 2006년 딸을 잃은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일 때문에 만났지만 개인적인 아픔을 서로 공유하고 위로하면서 더욱 친밀해지게 됐다.

친구가 된 이들은 서로에게 늘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박 대표는 이 화가가 가장 고마웠던 점으로 패션쇼를 할 때 이 화가의 그림 필름 자료를 조건없이 제공했다는 것을 꼽았다. 유명화가가 자신의 작품이미지를 패션의상에 사용하라고 흔쾌히 내주기도 쉽지 않고, 이 과정에서 어떤 단서도 달지 않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화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 박동준의 역량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그림을 좋아했던 朴 대표
“갤러리 운영하며 친분 쌓아…
상상력을 부르는 그림들이
의상 만드는데 많은 영감줘”


◇ 작품 이미지 내준 李 작가
“디자이너와 협업을 한 것은
박동준을 믿었기에 가능해…
패션의 창조적인 시도였다”

이 일로 인해 박 대표는 자신의 패션작품이 많이 바뀌게 됐다는 말도 했다. “이 화가의 작품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장중한 느낌이었는데, 밝고 화사한 이 화가의 패턴으로 인해 패션디자인의 영역이 훨씬 확장됐습니다. 이 화가의 뛰어난 작품이 패션디자이너 박동준에게 끝없이 영감을 준 것이지요.”

동화책 속 그림 같기도 하고, 아이가 그린 천진난만함이 묻어있는 그림 같기도 한 이 화가의 작품은 유치한 듯하면서도 세련된 멋이 있고 복잡한 듯 하면서도 단순미가 있는, 그래서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갖게 하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측면들이 박 대표의 영감을 자극한 듯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몇 년 전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을 그만두었다. 갤러리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 이 화가는 약간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단순한 디자이너가 아니었습니다. 실용적 성격이 강한 패션을 예술에 접목함으로써 패션의 창조적 표현을 보여준 디자이너였지요. 이런 점에서 박 대표의 역할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이고, 이런 박 대표의 시도가 계속 이어져나가야 한다는 것이 친구로서의 바람입니다.”

하지만 박 대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은 그만뒀지만 현재도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이사장을 맡는 등 패션에 관련한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 활동하면 옷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후배디자이너들을 보살필 겨를이 없는데 이런 측면에서는 나름 좋은 점도 있지요.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더욱 활발히 하고 있으니까요.”

박 대표는 갤러리 대표가 가진 역할의 중요성도 패션디자이너를 그만두게 한 요인이 됐다는 말도 했다.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할 때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고달픈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옷의 디자인과 판매는 물론 패션쇼를 위한 의상제작까지 늘 쌓여있는 일이 끝이 나질 않아 집에만 오면 파김치가 되어 쓰러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동병상련의 느낌을 갖게 됐고, 작가들이 나 보다 더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패션디자이너를 그만두고 갤러리 일에 몰두하면 역량있는 작가들을 좀더 많이 세상에 알리고 이들을 홍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말을 듣고 이 화가는 “역시 박 대표군”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말 끝에 이 화가는 “박 대표를 보면서 사회활동, 사회봉사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는 말도 했다.

“박 대표가 디자이너로서 너무 바쁜 데도 패션과 관련이 없는 다양한 사회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지금도 아름다운가게 대구경북 대표, 이상화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맡으며 이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것도 늘 시간이 부족해 애를 먹는데 박 대표는 서너 가지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의 활동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리더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측면에서 이 화가는 박 대표를 ‘햇빛 같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혀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박동준’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저는 왠지 사회적 도덕성, 정의감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세상을 보는 깊고 따뜻한 눈이 있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 가치있는 삶의 의미를 일깨우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늘 사람들이 넘쳐나지요.”

이 화가의 말에 대해 박 대표는 “아니다.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30대 중반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을 만났는데 그에게서 많이 배웠다. 당시 윤 구청장은 서점을 운영해 늘 바빴는 데도 ‘생명의전화’ 등을 통해 사회봉사활동을 펼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능력을 사회를 위해 쓴다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됐다.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예술이라는 것도 어쩌면 사회를 위한 봉사”라는 말을 했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이 단순히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희생이 녹아든 작품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예술가들도 위대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박 대표는 이들을 더욱 도와주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앞으로의 갤러리운영 계획도 살짝 이야기했다. 국내작가를 키우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아카데믹하면서도 품격있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다”는 박 대표는 “일년에 한두 번만 잘 팔리는 작가의 전시를 하고 나머지는 진짜 작업만 열심히 하는, 그래서 잘 팔리지 않는 작가들을 갤러리분도를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박 대표의 이 말에 이 화가는 “갤러리분도는 현재도 작가들의 역량을 최대한 펼치게 하는 전시들을 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진짜 메이저화랑은 판매고가 높은 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훌륭한 작가들의 전시를 많이 한 화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갤러리분도는 한국의 메이저화랑이라 할만 합니다.”

이 화가는 이 말 끝에 미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이 작품을 투자 가치로만 생각하는데 이런 사회 인식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투자 가치보다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그림을 살 때 그것이 미술품으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비싼 그림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지요. 이런 측면에서 갤러리분도는 나름 분별있고 미래지향적인 전시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좋아진다는 이들의 말처럼 진정한 친구가 있어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김수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