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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인터뷰


Column & Interview

패션디자이너 40년 박동준씨

작성자
박동준기념사업회
작성일
2020-11-03 16:46
조회
1303
영남일보 2012-09-06





“봉사활동하면 옷 향기가 달라…사진전으로 고정틀 탈피”
의류 대량생산시대에도 개성 살리는 맞춤복 열정
미술작품과 연계 눈길
예술·봉사활동도 활발



올해로 패션디자이너로서 활동한지 40년째가 되는 박동준씨가 자신의 패션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의류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옷이 넘쳐나면서 맞춤복을 만드는 패션매장은 점점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백화점과 의류전문점 등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바로 사입고 나서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역 패션계에서도 초창기 맞춤복을 하던 디자이너 가운데 상당수가 의류의 대량 생산에 참여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40년간 꿋꿋하게 맞춤복을 고집하고 있는 디자이너가 바로 박동준씨(61)다. 아름다우면서 입기 편한 옷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 길을 고집하고 있다. 그리고 대량 생산돼 많은 사람이 입고 다니는 옷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으로 똘똘 뭉친 옷을 소수의 사람에게 입히는 즐거움 또한 맞춤복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큰 요인이다. 그는 아직도 디자인에 대한 영감이 문득 떠오르면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옷을 만드는 재미도 디자이너 생활에 입문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옷을 만드는 일이 마냥 즐겁기만 할까. 박씨는 “패션디자인은 나의 에너지”라고 강조하면서도 “고통 또한 크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운영하던 의상실에서 옷 만드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봐왔기 때문에 그에게 이 일은 생활의 일부다. 모든 이들에게 일상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주듯이, 패션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옷을 만드는 것은 즐겁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옷을 만드는 창작과정에 자연히 고통도 뒤따른다. 하지만 그는 이마저도 즐거움으로 여긴다.

맞춤복을 하면서 창작성이 강한 작품을 선보여 왔던 그는 지역 패션계에서 미술과 패션의 만남을 시도하는데 앞장서는 역할도 했다. 그동안 대구화단의 거목이었던 고(故) 정점식 화백을 비롯해 대구를 대표하는 중견화가인 이명미, 멕시코의 국민화가 프리다 칼로, 밀레,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을 디지털프린팅한 원단으로 만든 작품을 패션쇼에 올리고 상품화해 판매도 했다. 그동안 서양화와의 접목을 시도했던 박씨는 최근에는 한국화가 김호득(영남대 교수)의 그림으로 패션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미술에 관심을 많이 기울인 것은 패션을 하려면 반드시 미술을 하라고 가르쳤던 스승 정점식 화백 때문이다.

이 말 끝에 박씨는 자신에게 3명의 스승이 있다고 말한다. 정 화백을 비롯해 패션디자인 분야에서는 한국 최초의 남성디자이너였던 이종찬 선생, 기자였던 아버지다. 모두 그에게 한 가지 일을 깊이 탐구하도록 했고, 패션을 좀 더 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줬다.



오는 10월24일부터 11월4일까지 갤러리분도에서 전시되는 사진작가 오상택씨의 작품 가운데 하나.
박동준 패션디자이너의 의상작품을 찍은 사진이다. <갤러리분도 제공>

박씨는 후배 디자이너에게 존경받는 선배로 첫손 꼽히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많은 후배 디자이너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그는 패션만이 아니라, 미술을 비롯한 예술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한편 봉사활동도 왕성히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는 패션브랜드 ‘코코 박동준’의 대표란 디자이너로서의 직함 이외에도 다양한 직함이 따라붙는다.

그는 사옥 2층에 ‘갤러리분도’란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갤러리분도는 국내외 우수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전시함으로써 대구를 대표하는 화랑으로 자리잡았다. 이 때문에 대구의 대표적 미술행사인 대구아트페어 조직위원장을 3년째 맡고 있다.

박씨는 ‘아름다운가게’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아름다운가게에서는 재활용품 판매 등 환경보호운동을 통해 지구와 인간을 살리는 중요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이전에도 ‘생명의 전화’ 봉사활동 등을 통해 나눔의 삶을 실천했다.

40년이란 짧지 않은 디자이너로서의 생활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30주년까지는 10년이나 5년 단위로 기념되는 해에 패션쇼를 했는데, 올해는 그런 행사를 아예 잡지 않았다. 다만 오는 10월24일부터 11월4일까지 갤러리분도에서 사진작가 오상택씨가 박씨의 패션 작품을 사진에 담은 사진전만 기획했다.

“30주년까지는 멋진 옷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패션쇼를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는 패션디자이너로서 받았던 여러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봉사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요. 이런 활동이 결국 패션을 달리 보게 하는 눈도 열어줬습니다. 패션은 단순히 옷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디자이너의 철학이 들어가 있어야 진짜 멋진 옷이 탄생하지요.”

그래서 올해는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는 행사가 아니라, 자신의 패션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패션에 사진을 접목한 전시를 준비한 것이다.

“봉사활동이 패션디자인에 미치는 영향은 큽니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옷처럼 보이지만, 봉사활동 등을 통해 내적 충만감을 쌓으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결국 옷이 지니는 향기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사진전을 기획한 것도 패션디자인의 고정된 틀을 벗어던진다는 의미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동안 앞만 바라보고 후배들을 도와주는데 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는 그는 앞으로 후배들을 지원하는데 힘을 쏟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디자이너 생활을 하면서 저처럼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보잘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지금처럼 성장한 만큼, 받은 사랑을 후배에게 베풀어 대구에 뛰어난 패션디자이너가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수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