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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박동준상 수상자

2001년에 뮌(Mioon)이라는 이름으로 아티스트 듀오를 결성한 김민선과 최문 선은 비디오, 설치, 조각과 사진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초기에 는 주로 ‘집단 군중’이 가지는 유기적인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것의 사회적 의미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면,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군중을 이루고 있 는 개인의 내밀한 의식의 흐름이나 개인이 맞닥뜨리는 사회적 시스템과 규제 , 그 주위에서 반응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1972년 출생으로 독일 쾰른 미디어 예술대학(김민선), 뒤셀도르프 미술대학( 최문선)에서 수학한 후 독일 쿤스트 뮤지엄 본(Bonn), 쿤스트 페어라인 코스 펠트, 코리아나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미디어시 티서울, ZKM, 리버풀비엔날레, 일본ICC, 국립현대미술관, 부산비엔날레 등 다 수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2009년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2005년 독일 노 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가 주는 젊은 미디어 예술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 시상식일정 : 2021.11.11(목) 오후 6시
∙ 장소 : 갤러리분도 3층
∙ 전시일정 : 2021.11.11~12.11

심사의 변

2021년 박동준 상 미술 부문 첫 번째 시상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수상자를 내는 과정은 가볍지 않았다. 선정 절차에 임하기에 앞서 수상자 선정 기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크게 세 가지 점이 중요하게 거론되었다. 첫째, ‘사회를 디자인한다’는 박동준 디자이너의 생전의 미학적 비전과의 부합 여부. 둘째, 현재까지의 예술적 성과와 향후의 지속적 발전 가능성, 셋째, 향후 다양한 협업 등을 통해 박동준 디자이너가 남긴 위업을 더욱 빛내 줄 가능성이다. 물론 이 기준은 제 1회 수상자를 내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 간의 협의의 산물일 뿐, 그 이상을 소급하는 것은 아님을 밝힌다.
이상의 기준을 근거로 해서 진행된 선정 논의의 결과, 미디어 작가 ‘뮌’이 제 1회 박동준 상의 수상자로 최종 선정되었다. 심사위원 전원이 뮌이 이제껏 그들의 창작을 통해 제기해온 일관된 발언, 그것에 담긴 시대정신의 무게감에 대해 일치하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그 태도와 박동준 디자이너의 생전의 미학적 노선과의 일맥상통하는 바에 대해서도 이견이 없었다. 이 수상이 뮌의 잠재적 역량이 패션과 미술이라는 장르 간 장벽을 허무는 데까지 확장되는 것에 대한 기대감 또한 작용했다.
제 1회 박동준 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뮌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하며, 작가로서 더욱 정진하여 박동준 상의 뜻을 한층 드높여 주시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2021년 1월 19일 심사위원 일동

박동준상 시상식

박동준 다큐영상2021-사랑합니다 박동준

박동준 다큐영상2021 - 사랑합니다 박동준

평 론

발생한 것이 구조화될 때


이선영(미술평론가)

현대사회의 구조와 규칙을 분석과 풍자라는 양날로 표현해온 뮌(최문선+김민선)이 이번에도 특이한 모델을 가지고 나왔다. 뮌의 작업은 비판적이면서도 위트와 유모어를 잃지 않으며, 관객의 상상력 또한 여러모로 고무시켜왔는데, 올해의 박동준 상 수상전(갤러리 분도) 또한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여전하지만, 좀 더 선명하고 날카로워졌다. [기억극장](코리아나미술관, 2014), [미완의 릴레이](아르코미술관, 2017) 등, 뮌의 최근 몇 년간의 작업들이 수집가적인 방식으로 기이하고 다양한 사물들을 설치하던 방식을 떠올린다면. 이번 전시의 시각적인 면은 단순한 편이다. 선명한 다각형 구조에서 반사되는 빛은 간접적 방식이 아니라 관객의 시선을 찌른다. 하지만 작품 내부에 깔린 시공간적 층위는 여전히 복잡하다. 이번 전시의 작품은 공간적 구조와 시간적 서사가 함께 가동하며, 지금과 그때, 여기와 저기 뿐 아니라 발생과 구조 등을 포함한다.
작가가 직접 쓴 대사가 함께 들려오는 전시장은 시청각적 감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스프레이 락카로 칠해진 알록달록한 혼돈의 구름 속에서 솟아오른 5각형 반사체의 뿔은 주변의 빛과 색을 반사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참조한 슈비터스(Kurt Schwitters 1887-948)의 작품 [Merzbau](1923-1936)가 수직적으로 구축된 공간 꼴라주라고 한다면, 수직적인 형태는 아방가르드, 또는 아방가르드의 재현을 상징한다. 아방가르드는 재현에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지만, 역사는 늘 아방가르드를 재현해 왔으며, 뮌의 작품은 아방가르드와 그 재현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한 작품에서 다룬다. 옥타비오 파스는 [낭만주의로부터 아방가르드까지의 현대 시론]에서, 아방가르드는 호전성, 비타협주의, 용감한 선구적 탐험, 미래를 향한 투쟁에 있어서 자기의식적이고 영웅적인 신화를 가진다고 평가한다. 현존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깊은 불신에 바탕 한 전복적 사고가 아방가르드의 특징이다.
아방가르드에게 파괴와 창조는 같은 차원에 있다. 20세기에 빛을 발휘한 아방가르드는 옥타비오 파스의 한탄처럼 ‘21세기에 가능한 한 빨리 도달하려는 것’, 즉 멈추지 않고 진전하는 것, 영원한 변화가 그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아방가르드 또한 거듭된 재현적 과정에 의해 단순화된다. 발생기에는 아방가르드였어도 재현되는 순간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뮌의 작품에서 불확실성과 확실성의 대조로 반복된다. 예술/시장, 전위/대중 등등의 대조 또한 같은 계열에 속한다. 어둑한 공간 속에서 들려오는 대사에 상응하는 시각적 메아리라고 할 만하다. 150cm로 최고 높이의 뿔은 다른 군소 뿔들과 달리 빙빙 돌아가기 때문에 수평/수직의 공간성은 어지러운 반사면들 위에서 뒤섞이게 된다. 혼돈의 구름을 가장 빨리 뚫었던 이 지고한 존재는 그 동력을 멈추지 않는다. 가장 높이 솟은 뿔은 한동안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계의 낮과 밤, 또는 계절을 정의할 수도 있다.
그것은 영원히는 아니어도 일정기간 동안 지배적 규칙이 되는 것이다. 현재 최고점을 찍은 존재는 자신은 보지 않고 보여지기만 한다. 시각의 비대칭성은 모든 권력 불균형의 징후이다. 같은 모양새와 재료로 만들어진 뿔들은 서로를 반사하면서 게임의 원칙을 공유한다. 하나의 원칙이 지배하는 경쟁적 구도다. 누가 더 빨리 정상에 도달하는가.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놓인 30여개의 LED가 박힌 금속 막대는 서로 다른 간격을 가지며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바코드처럼 보인다. 바닥에서 아웅다웅하면 안보이던 구조가 거리를 달리하면 분명해진다. 개인의 의지와 열정, 꿈을 모두 실어서 경주하는 게임이 정말 단순한 사실로 귀결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은 그것을 가격이라고 정의한다. 거리의 미술처럼 락카로 자유분방하게 칠해진 바닥과 금속 미러 재질의 기하학적 구조물은 그 위치나 방향성 만큼이나 대조적이다. 원초적 혼돈에서 질서가 잡혀가는 서사는 모든 신화에 깔려있다.
이 작품에 쓰인 재료들은 매우 현대적이지만, 작가는 현대에도 여전히 신화가 지배하고 있음을 말한다. 질서는 상징적이며 인간은 그렇게 이미 조성된 상징적 우주에 태어난다. 물론 상징계는 고정되지 않고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매우 느리다. 느릿한 연속적 진화와 달리 이전의 질서에 불연속적 문턱을 만드는 혁명은 게임의 원칙을 바꾸며 새로운 규칙을 시작한다. 예술 또한 크게 사회나 역사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변화한다. 형식을 앞세우는 예술은 변화의 양상이 더 다채롭다. 유독 예술은 변화 그자체를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다. 특히 변화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근대는 새로움과 진보의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뮌이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품은 단순함 속에서 많은 상징가(價)를 가진다. 몇 년간 지속된 ‘기억’과 ‘극장’ 스타일의 작품을 지배했던 어둠과 그림자에서 빛의 세계를 향한 움직임이 강화된다. 인간 대신에 사물들이 주역을 맡은 그림자 연극 같았던 이전의 작품에서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볼거리는 축소화되었다.
대신에 듣기를 권한다. 관객은 이러한 시각 상이 나오게 된 이유를 소리를 통해 추리하게 된다. 원근법적인 사각뿔을 떠올리는 기하학적 구조체는 시각성에 내재한 한정된 방향성을 내포한다. 시각과 달리 다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Binaural Sound)는 시각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와이파이 헤드폰을 끼고 전시공간을 돌아보는 관객들은 최소화된 시각성을 청각성으로 보충한다. 뮌이 이 전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 삼는 것은 시각중심주의에 깔린 재현의 이데올로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의 한 다다이스트를 소환한 것은 생성기에는 뭐라 규정할 수 없는 혼돈이자 자유의 상태가 재현될 때의 여러 단계를 압축해주기 때문이다. 2020년 일민미술관에서의 전시 [기억극장; 황금광 시대]에서 한국의 1920년대 문화를 다룬 터라, 작가가 오랫동안 유학했던 독일의 1920년대를 다룬 것이다. 작년 전시에서 뮌은 문화주택을 연구했는데, 일제 강점기의 문화주택은 병풍과 침대가 혼재하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주거 양식으로, 지금 아파트 못지않은 물신숭배의 대상이었다.
문화주택의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수직의 LED 기둥으로 배치하고 가상의 화자인 기자의 목소리로 지금은 사라진 문화를 회상하게 한다. 내용이나 형식에서 전방위적인 작품을 추구해온 뮌은 2000년대 초기 작품부터 사운드 설치작업을 자주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 입체적 소리(대사)와 연동되는 건축적 구조와 빛이라는 형식은 지속된다. 소재에 따라 달라지는 대본은 시각적 이미지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나간 시대이기에 많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잡다한 자료나열이 아니라 강력한 효과가 요구되었다. 사운드 설치작업은 눈과 귀, 지각과 기억을 동시에 공략한다. 문화주택을 모델로 한 작품은 LED 기둥을 공중에 띄워놓아 당시의(그리고 지금도 여전한) 붕 떠 있는 욕망을 표현했다면, 다다이스트의 작품을 소환한 건축적 구조는 미술계의 작동방식에 특화시킨 것이다. 아파트는 독일에서는 우리나라 먄큼 선호되지는 않는 주거 양식이며, 주택이라는 대중적 상품과 아방가르드의 실천에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뮌은 아방가르드의 재현의 문제를 전시기획이나 미술 시장, 미술사적 평가 등으로 확장시키면서 물신적 욕망이라는 연결고리를 드러낸다. 점멸하는 빛처럼, 사라지는 소리처럼 허무한 욕망은 어떤 본질이 아니라 시스템의 산물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1920년대는 일제강점기로 문화통치가 시작되어 백화점을 비롯한 대중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때였고, 독일의 경우 베를린과 하노버 등지의 다다, 바우하우스 등 해체와 재구축이 이루어졌던 때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1920년대는 기계 및 기하학적 질서에 투사된 유토피아가 발흥했던 시기이고, 이는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사의 전면에 나와 있다. 슈비터스가 활동하던 독일은 전후의 물질적 궁핍과는 반대로 정신적으로는 국가재건의 기운이 넘쳐 있었다. 바우하우스 운동이 대표적이다.
바우하우스의 학생이기도 했던 디어스틴은 [바우하우스]에서 바우하우스는 당시에 날카로운 윤곽선과 합리성을 수반한 기계적 양식의 동의어로 쓰였다고 말한다.
산업혁명은 철, 유리, 콘크리트를 공급했던 것이다. 디어스틴은 광을 낸 금속재 표면과 장식이 없는 표면에서 반사되는 바우하우스의 상징과 같은 빛은 이성과 객관성의 빛이기도 했다고 평가한다. 공업적 재료를 사용하면서 뭔가 번쩍거리는 비전을 보여주는 뮌의 작품은 1920년대의 분위기를 공유한다. 이 시대의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는 ‘투명하게 밝은 새로운 세계가 서광 속에 번쩍이며 그 최초의 광선을 투사한다. 그 가치란 영원한 변화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1920년대의 유토피아주의는 그림이나 조각보다는 건축에서 활발하였다. 노버트 린튼은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는 철학자들을 기능적으로 결합된 요소들로부터 정립된 사고체계의 가치를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에펠탑과 같은 공학의 경이를 성취하였다고 말한다. 기계는 제작공정의 투명성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기계에 대한 감정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기술에 의한 예술의 지양(止揚)이 이루어진 것도 1920년대의 특징이다.
‘건축이란 미적 과정이 아니다…건축이란 조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기술적 경제적 심리적 조직이다.’ (한네스 마이어,1928) 종합예술로 귀결된 보편성의 파토스는 정보사회가 도래한 지금도 생생한 울림을 준다. 바우하우스를 비롯한 집단적 예술 문화 운동은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코드를 확립하려고 했다. 예술에서 사용되지 않은 기성의 재료를 사용하여 구축과 해체를 반복하는 것 또한 1920년대의 시대정신 및 양식을 공유하지만, 뮌이 참조하는 슈비터스의 [메르츠바우] 또한 구성적 측면을 가진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하지만 공공의 장소가 아닌 작가의 집에서 실행된 [메르츠바우]는 시대의 합리주의를 개인적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메르츠바우]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의 퍼즐 맞추기는 개인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아방가르드의 기준에서 전쟁과 경쟁으로 기울어지기도 하는 합리주의는 합리주의가 아닌 까닭이다. 국제주의로 획일화되었던 근대가 저문 시점에서는 공용어(랑그)의 개인적 사용(파롤)이 더욱 관심을 끈다.
로버트 휴즈는 바우하우스라는 명칭이 애초에 영웅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과업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장인들의 사회를 의미한다고 지적하면서, 유토피아적 집단체제의 상징으로서 성당이 가지는 이미지는 바우하우스 신화의 일부분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로피우스의 말대로 바우하우스는 집단적인 의지로 만들어진 ‘수정과 같은 새로운 신념의 상징’으로 자처하며, 수도원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다다의 극렬한 무정부주의는 1920년대의 시대의식과 짧은 접점만을 남긴다. 바우하우스에 비한다면 [메르츠바우]는 개인적 성당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들의 합리주의 저편에는 대중적 보수주의가 존재한다. 아론 샤프는 1920년대의 많은 비평가들은 현대미술이란 곧 무정부주의이며 무정부주의는 공산주의이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적 외관에 대해 손상을 가하는 것은 기존 사회체제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히틀러나 스탈린, 무솔리니, 그리고 그들의 선전선동에 넘어간 대중들의 미의식은 달랐다.
지배적 취향은 리얼리즘의 탈을 쓴 신고전주의 양식에 대한 선호였으며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었기에, 아방가르드의 진로 또한 평탄치 않았다. 퇴폐미술가로 찍힌 다다이스트의 종합예술은 1920년대에 대한 뮌의 관심을 받을만했다. [메르츠바우]와 그것의 복원에는 많은 역사적 문화적 담론이 깔려있다. 구체적 매개고리가 되는 것은 공간이다. 2020년 [기억극장] 전에 대한 또다른 버전이며, 미술사의 인물이 등장하다 보니 미술사나 미술시장에 대한 담론과 연결된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문화주택과 관련된 담론은 반예술, 다다이스트 등으로 알려진 전위파 작가인 슈비터스가 자택에 내밀하게 구축했던 공간 연구로 확장된 것이다. [메르츠바우]는 세계대전 중 소실되었는데 1980년대의 유망한 전시기획자가 그것을 다시 복원하려는 기획에 나서는 과정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골자이다.
이번 전시 [픽션 픽션 논픽션-슈비터스와 나(Fiction Fiction Nonfiction–Schwitters & Me)]는 하노버 지역의 다다 작가였던 쿠르트 슈비터스의 [Merzbau]에 얽힌 사실과 상상의 교직물이다. 슈비터스는 다다 활동을 하면서 잡지 [메르츠](1923-1932)를 발간했고, 이를 통해 반예술을 선언하고 실천했다. 기차표나 신문, 여러 인쇄물 등의 글자 등, 당시로서는 반예술적 소재들을 시와 미술에 끌어들인 꼴라주 작업을 [메르츠 빌덴]이라 명명했다. 곧 이러한 ‘메르츠 회화’는 공간으로도 확장되었다. 하노버의 자택에서 16년간 진행된 입체적인 아상블라주 작업인 [메르츠바우]는 일상과 예술이 상호침투한 총체적 작업으로 평가된다. 작가는 이를 성당과 같은 총체적인 예술작품이라 믿었지만, 나치 정부는 그의 작품을 퇴폐예술로 규정짓고 탄압했다. 뮌의 작품에서는 혼란 속에서 솟아오른 다각형 구조물이 아방가르드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그 뿌리는 또한 바닥의 혼란과도 무관치 않다.

당시에 대중은 물론 전체주의적 독재자들에게 반예술로 규정된 이유다. 자유스러운 라커칠과 반듯한 기하학은 시간적, 논리적 선후, 즉 발생과 구조의 관계다. 슈비터스의 독일 활동과 관련해서 독재자는 [퇴폐미술전] 등을 열면서 자기들의 이데올로기와 잘 부합하는 고전주의와 대조하기도 했다. 이브 미쇼는 [예술의 위기]에서 근본적으로 파시스트와 사회주의적인 체제들은 모더니즘을 증오했던 현대적 체제였다고 말한다. 나치의 선전국장 괴벨스는 국제주의적이거나 볼셰비키적인 작품들과 ‘독일적’이 아닌 작품들을 미술관으로부터 추방하기를 요구했다. 현대의, 또는 아방가르드적인 예술은 악화된 개인성의 예술로 간주된다. 국민들은 그들을 함께 모아주는 예술을 필요로 하는데, 퇴폐적인 예술은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파시즘 미학은 순진한 사실주의와 닮음의 범속성을 찬양한다. 스탈린주의는 나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비에트 연방에서도 나치 독일과 마찬가지로 예술이 사회적 유토피아의 실현을 위해 중요시(그리하여 문제시) 되었던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에서도 거의 똑같은 모델 위에서 예술가들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거대기계가 자리를 잡는다. 보리스 그로이스는 [아방가르드와 현대성]에서 전체주의와 아방가르드의 대립을 서술했다. 그에 의하면 러시아의 10월 혁명의 세계는 예술적으로 완전히 조직화된 조화로운 삶을 위해 이전 시대의 무질서와 혼란이 사라지는 세계였다. 그러나 혁명기의 혼란이 정리되면서 스탈린 시대의 문화는 역사의 종말 후에 나타나는 실제적인 문화라고 간주된다. 스탈린 프로젝트는 ‘개인적인 것, 데카당트한 것, 음탕한 것, 서구적인 것’을 금지하였다. ‘퇴폐적 예술’과 대조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역사적 낙관주의, 민중에 대한 사랑, 삶의 기쁨, 진실한 휴머니즘’ 등을 추구하며, 예술의 보편적인 특징인 긍정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슈비터스의 한 작품에 얽힌 역사적 담론은 아방가르드가 좌익 우익 모두에게서 위협받았음을 보여준다. 독일은 이미 분단을 청산했지만, 한국은 아직도 분단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데올로기 대립은 무늬만 달리하여 계속 출몰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메르츠바우]와 그 복원에 얽힌 픽션과 논픽션은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 뮌이 몇십년 전의 아방가르드의 궤적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여전히 뮌이 진영으로 나뉜 문화계나 대중의 몰이해와 명시적으로 암시적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술을 주장한다면, 그 반대는 반예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방가르드는 늘 이러한 전선에 자리했고, 슈비터스가 집이라는 개인의 공간을 장기지속 작업의 장으로 삼은 이유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 일상의 잡동사니가 예술이 되었던 다다 운동이 건축적 환경으로까지 확장되었던 [메르츠바우]는 아방가르드 활동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총체성으로 고양되기를 열망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총체성에의 갈망을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 비해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던 독일의 특수성에서 분석한 시각은 이러한 지향의 보편성을 말해준다. 피터 게이는 [바이마르 문화]에서 ‘서구의’ 가치로부터 분리시켜, 자신을 그보다 격상시키려 했던 것은 독일적 이념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평가한다. 피터 게이는 바이마르 문화의 풍속도를 다룬 책에서 독일 지성사에 수없이 나타난 ‘독일성’의 예를 든다. 베르너 좀바르트의 [상인과 영웅]은 (서구의)상인들과 (독일의)영웅들을 대비시킴으로서 상업적 정신을 비난하였고, 퇴니스의 사회학 고전인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진정한 유기적 조화와 거대한 사회의 물질주의를 편파적으로 대비시켰다. 또한 반유태주의자 클라게스는 [영혼의 적으로서의 정신]에서 영혼과 정신을 대립시키면서 반이성주의의 이름 아래 지성을 공격하였다.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혀졌다.
피터 게이에 의하면 독일인에게 적들이란 ‘인간성을 빼앗는 기계, 자본주의적 물질주의, 신이 없는 합리주의, 뿌리 없는 사회, 세계주의적인 유태인들, 거대하고 모든 것을 삼키려는 도시’ 등이었다. 전쟁은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는 또 하나의 탈출구였다. [바이마르 문화]는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이들은 우월한 독일의 산물인 문화를 보존, 전파하고 러시아의 야만적 우중사회, 프랑스의 쇠락한 퇴폐주의, 미국의 기계주의적 몽상, 영국의 비영웅적 상업주의에 대해 자신들의 문화를 방어하기 위하여, 독일의 특수한 사명을 옹호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들은 연합국들의 단순한 ‘문명’과 독일의 ‘문화적’ 우수성을 대조하였다. 1920년대의 독일의 예언자와 구도자들은 자유가 아닌 결속과 영적인 통일성, 전체성을 추구하였다. 피터 게이는 이러한 전체성에의 갈망을 현대성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으로부터 발생한 퇴보라고 결론짓는다. 흥미로운 것은 파시즘의 반대자였던 양심적인 독일 지식인들이나 예술가들도 ‘독일성’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바우하우스의 창시자인 발터 그로피우스는 건축가로서의 자신의 사회적 의무에 대한 완전한 의식을 지니게 된 것은 1차 대전의 결과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것은 한 세계의 종말이 온 것이고, 독일의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이오넬 파이닝거는 별들이 비추고 있는 높고 가늘고 세속적인 성당을 묘사하고 있는 목판화로 이러한 새로운 통일성의 요구를 그려낸 바 있다. ‘__문화’라고 일반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했던 1920년대 독일의 분위기는 이후에도 반복되는 어떤 원형들이 충돌하는 장이었다. 그것은 대중들에게 쉽게 전파되는 좌우익 전체주의의 발흥이며, 전체주의에 대한 대응 또한 대안의 전체를 추구함으로서 가능했다는 점이다. 슈비터스의 개인적 차원의 총체성은 20세기 초반의 이상주의가 허물어진 시대의 또 다른 지표로 다가오게 된다. 독일 표현주의가 도시와 자연을 극명하게 대비시켰다면 독일의 다다는 현대성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문명비판적 측면이 강했고, [메르츠바우]에 나타나듯 전체에의 비전은 내밀한 차원으로 이동했다.
물론 바우하우스같이 합리주의적 방식으로 총체성을 시도한 예가 있었지만, 이 또한 탄압받았다. 2차대전 중 폭격으로 사라진 메르츠바우(1943년 소실)는 1981년 명망 높은 큐레이터 헤랄트 지만이 기획한 전시 [Der Hang zum Gesamtkunstwerk]에서 복원된다. 아주 어린 나이의 기억을 더듬는 슈비터스의 아들과 몇장의 사진을 근거로 스위스 무대디자이너 페터 비세거가 [메르츠바우]를 재현했다. 뮌이 쓴 대본에는 작가의 아들, 기획자, 무대미술가 등 복원에 관련된 이들의 소통을 가상으로 구성한 것이다. 복원된 시점으로부터도 몇십년이 지난 지금, 담론의 재구성에서 픽션은 필수적이다. 80년대에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를 암시하는 녹음 테이프가 들어 있는 자동응답기, 슬라이드 기계 소리 등 이야기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가 세세한 부분이 재연되었다. 쿠르트 슈비터스의 아들인 에른스트 슈비터스, 무대미술가 페터 비세거, 갤러리스트 등이 화자인 목소리들은 예술가 개인의 차원에서 행해진 종합예술(Gesamtkunst)의 개념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하노버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Merzbau]를 봤던 것은 1936년 12월’이며, 그때 나이가 불과 8세라는 사실, 그리고 ‘작가가 거주하면서 15년간 진행된 작업’이 ‘미술관도 갤러리도 아닌 본인이 살던 집 내부의 아뜰리에 공간부터 시작하여, 다락, 지하공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집 전체 6개의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공간을 콜라주하고 재구성했던 작품이라고 하는 짧은 몇 줄의 설명’으로 원작을 다시 구현하기 위한 세세한 치수를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아이의 눈으로 봤을 때도 [메르츠바우]는 기이했다. 어렴풋한 기억은 재현될 수 없고 제시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원본인 [메르츠바우] 자체가 고정됨 없이 계속 변화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결정적으로 중단시킨 것은 다다보다 더 진정한 반(反)문화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다시 평화가 왔지만, 이제는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장판에서 늘 상 벌어지고 있다. 이후 아트페어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시대적 공간적 거리를 초월하여 동시대성을 띈다.
진정한 보편문화를 이룩한 것은 바로 시장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시공간의 차이를 이용한 재현의 정치경제학이 가동된다. 1920년대의 한 작품에 대한 호명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의 방과 같은 시장 논리 속에서 아방가르드란 어떻게 맥락화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준다. 원작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하여 끼워 맞춘 퍼즐을 매뉴얼로 만들어 전시 때마다 재현될 수 있다. 이후 하노버미술관에 영구설치된 슈비터스의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인상은 작품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자료라는 다소간 밎밎한 느낌이었다고 전한다. 1920년대에 개인적 공간에서 발생한 전위예술작품을 1980년대에 복원되는 상황은 전위가 제도화되는 과정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미술관 전시뿐 아니라 작가의 세계를 팔 수 있는 형태로 포장해야 하는 미술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미술이 놓여지는 방식에 대한 문화적 연구를 병행한다. 최초의 작품은 자유이자 혼돈이지만. 그것이 복원은 정확성을 요구하는 과정, 즉 재현이다.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포착하는 것, 미술사적 의미, 복원된 작품이 세계 순회전을 하게 될 때 해당 국어로 번역하는 것까지, 최종적으로는 그 작품(복제품)의 미술 시장에서의 가격 산정이 모두 재현적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미술 뿐 아니라 모든 가치평가가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재현은 투명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투명성을 자처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이다. 재현이라는 깔대기, 그 환원적 장치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부응하며 질서와 혼란, 생산과 파괴를 동시에 규정짓는다. 단품으로 딱 떨어지는 작품은 재현되기 어렵지 않지만, 작가의 사적 공간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그것도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그것이 재현이 될 수는 있는 것이며, 누가 누구를 위해 재현되는 것이며, 왜 그 시점 또는 그 장소에서 재현되어야 하는 것인가. 뮌은 이 근본적 문제를 아방가르드의 실천과 시장을 대조하면서 전개한다.
복원의 문제는 2년 전에 보험도 안 되는 허름한 농지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이전의 작업들이 화재로 완전히 전소됨과 동시에, 긴 시간을 작업해온 뮌이 원점으로부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나온 개념이기도 하다. 90년대부터 열심히 해온 자신의 작업들을 복원 또는 재현하려는 것은 아니다. 막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작품은 재현되지 않는다. 먼 훗날 누군가가 몇장 남지 않은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작가는 명확히 한정지을 수 없는 생성의 과정에 충실하다. 결과는 자기 몫이 아니다. 예술보다 상업적인 차원에서 더 잘 조직화 된 대중문화는 사후에도 저작권이 계산되기도 한다. 반면 작가는 대개 사후에나 평가된다. 그것도 재현의 그물망에 걸리는 운이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높아진 유동성 덕분에 최근에 더욱 달궈진 미술 시장의 열기는 이제 살아있는 신도 가능하게 했으며, 시장과는 영원히 관계가 없을 듯한 작업에 대한 자의식을 발동시켰다.
그 이전에도 주식의 등락을 움직이는 숲으로 제시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규칙을 표현하기도 했던 뮌은 풍요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이 불확실성과 위험을 동시에 키우고 있음을 말한다. 정치경제학 뿐 아니라 문화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뮌은 소수의 인맥으로 기득권이 유지되는 문화 카르텔을 웹아트로 풍자하면서 미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요란하게 칠해진 카펫 바닥은 화려한 시장과 거기에서 피어오르는 활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무엇이 왜 어떻게 정상에 설 수 있을지 예측하기 힘들다. 어디서 잭팟이 터질지 모르지만, 터지기만 한다면 엄청난 물신숭배의 대상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층의 혼탁한 공기와도 다를 듯한 상층부에서도 움직임은 있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현상을 유지하고 확고히 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혼돈이라 할지 활기라고 할지, 화려함이라고 할지 천박함이라고 할지 모를 바닥의 상황으로부터 솟아난 구조는 자의적인 부침(浮沈)을 영원한 진리로 선포하려 한다. 발생과 소멸을 현재의 구조로 고정시키려는 의지다. 미술사적 전거까지 포함하는 뮌의 작품은 현재 액면가 최고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압축도로 다가온다.

PORTFOLIO

픽션 픽션 논픽션(Fiction Fiction Nonfiction). 2020

사운드 라이팅 설치 (23min), 철구조물(10m*6.5m*2.4m(h)), DMX Light, 헤드폰, Binaural Sound(입체음향)

1920기억극장 <황금광시대>, 2020, 일민미술관

이동식 놀이동산, 2017

키네틱 설치, 25개의 혼합재료 구조물, 10m * 5m *3m(H) 철재 원형 구조물, 가변크기

“미완의 릴레이“ _ 아르코미술관 뮌 개인전 2017

BARRICADE MONUMENT 바리케이드 모뉴멘트, 2017

6채널 비디오 설치, HD Video, 사운드, 10min, loo, 안무 및 출연 : 조형준 안무가 <뭎>

“미완의 릴레이“ _ 아르코미술관 뮌 개인전 2017

Lead Me to Your Door, 2011

비디오 설치, 88 HD 비디오, 각 10분, 사운드, 나부 흉상, 각 3000 x 2000 x 3000mm

Auditorium (Template A-Z) 오디토리움 (템블릿 A-Z), 2014

설치, 5 책장, 오브제, DMX콘트롤러, LED조명, 모터, 700x500x320cm

“기억극장“ _ 코리아나미술관 뮌 개인전 2014

Human Stream 인산인해, 2005

비디오 설치, DV, 4min. Sound, 깃털, 2개 흉상, 6개 팬, 각 350 x 350 x 200cm

Ensemble (Ethics Business) 앙상블 (윤리적 사업), 2014

권투 링 미니어쳐, 포그머신, 8채널 사운드, 1:05초, 가변크기(권투링 미니어쳐 40x40x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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